RRL은 옷 좀 입는다는 사람들은 아는 이름이다
RRL. 더블알엘. 랄프 로렌 라인 중에서도 뭔가 좀 ‘찐’들만 아는, 그런 느낌이 있다. 폴로 랄프 로렌이 밝고 건강한 아메리칸 클래식이라면, RRL은 미국의 거칠고 투박했던 과거, 먼지 풀풀 날리던 시절의 로망을 그대로 담아낸 브랜드다. 단순히 빈티지 복각이라고 하기엔 뭔가 더 깊은 이야기가 있다. 랄프 로렌이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 그의 심장이 뛰는 소리가 담긴 브랜드가 바로 RRL이다. 왜 우리가 이 이름에 반응하는지, 한번 제대로 파헤쳐 본다.

 

Chapter 1: 시작점, 콜로라도의 바람

RRL, 이 이름은 랄프 로렌과 그의 아내 리키 로렌의 이름 앞 글자를 따서 지은 콜로라도 목장, 'RRL Ranch'에서 유래했다. 당시 패션계는 미니멀리즘이 대세였는데, 랄프 로렌은 정반대의 길을 간 것이다. 그는 진짜 미국적인 것,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가치를 담은 옷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콜로라도 목장에서 말을 타고, 자연과 호흡하면서 느꼈던 그 감성, 그 자유로움, 그 강인함. 그것을 옷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RRL은 단순히 옷 장사가 아니라, 랄프 로렌 개인의 꿈과 철학이 응축된 결과물인 셈이다.


Chapter 2: 영감의 지도, 과거에서 길어 올린 조각들

RRL 옷들을 보면 특정 시대가 떠오른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중반, 미국이라는 나라가 막 꿈틀대며 자리를 잡아가던 그 시절이다. 영감의 원천은 무궁무진하다.

  • 아메리칸 워크웨어: 탄광에서 일하던 광부, 철도를 놓던 노동자, 농장에서 땀 흘리던 농부들의 작업복. 질기고 튼튼해야 했던 그 옷들의 실용적인 디테일과 투박한 멋이다.
  • 웨스턴 스타일: 황량한 서부를 누비던 카우보이들의 데님, 가죽 재킷, 웨스턴 셔츠. 자유와 개척 정신의 상징이다.
  • 밀리터리: 제1차,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군인들이 입었던 군복들. 기능성과 내구성은 기본, 특유의 남성적인 실루엣과 디테일이다. 필드 재킷, 항공 점퍼 같은 것들이다.
  • 네이티브 아메리칸: 그들의 독특한 문양, 색감, 수공예적인 디테일들. 자연 친화적이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준다.

RRL 팀은 그냥 상상으로 디자인하는 게 아니다. 전 세계를 뒤져서 진짜 빈티지 의류 아카이브를 모으고, 그것을 철저하게 연구 분석해서 RRL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옷 하나하나에 이런 방대한 리서치와 스토리가 담겨 있어 깊이가 다르다.

 

Chapter 3: 진짜를 입다, RRL의 시그니처 아이템

RRL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아이템들이 있다. 이건 단순한 옷이 아니라, RRL의 철학을 보여주는 상징 같은 것이다.

  • 데님: RRL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일본산 셀비지 데님을 주로 사용하는데, 구직 방직기로 짜서 특유의 거친 질감과 깊은 인디고 색감이 일품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입는 사람의 습관에 따라 워싱이 생기고 변해가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데님이다. 롤업 했을 때 보이는 셀비지 라인은 RRL 데님의 자부심 같은 것이다. 다양한 핏이 있지만, 하나같이 ‘진짜’ 데님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 워크 셔츠 & 재킷: 빛바랜 듯한 샴브레이 셔츠, 두툼한 플란넬 셔츠, 그리고 투박한 워크 재킷(초어 코트). 이런 것들은 100년 전 노동자들이 입었을 법한 디테일을 그대로 살렸다. 트리플 스티치나 체인 스티치 마감, 기능적인 포켓 디자인 같은 것들이다. 입을수록 몸에 맞게 부드러워지고 자연스럽게 낡아가는 매력이 있다.
  • 가죽 재킷: RRL 가죽 재킷은 남자의 로망 그 자체다. **말가죽(Horsehide)**이나 소가죽(Steerhide) 같은 최고급 가죽을 사용해서, 처음엔 좀 뻣뻣해도 입을수록 길들여지면서 기가 막힌 광택과 주름이 생긴다. 클래식한 라이더 재킷이나 A-2 플라이트 재킷 스타일이 대표적이다. 이건 뭐, 거의 평생 입는 옷이다.
  • 밀리터리 아우터: 필드 재킷, 덱 재킷, 봄버 재킷 등 군복에서 영감을 받은 아우터들도 RRL의 강점이다. 오리지널의 디테일을 충실히 재현하면서도 현대적인 핏으로 다듬어서, 실용적이면서도 스타일리시하게 입을 수 있다.
  • 스웨터 & 액세서리: 두툼하고 견고하게 짠 니트웨어, 목 늘어난 듯 자연스러운 헨리넥 티셔츠, 그리고 RRL 룩을 완성하는 액세서리들. 빈티지 스타일 벨트, 손으로 그린 듯한 반다나, 캔버스나 가죽 소재 가방까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만든 게 없다.

Chapter 4: 만드는 방식, 타협 없는 퀄리티

RRL이 비싼 이유. 그건 그냥 브랜드 값이 아니다. 제대로 된 물건을 만들기 위한 타협 없는 고집 때문이다.

  • 소재: 위에서 말한 일본산 셀비지 데님, 이탈리아나 미국의 고급 가죽, 튼튼한 캔버스 원단처럼, 세계 각지에서 최고의 소재를 공수해 온다. 옷의 기본은 결국 소재이기 때문이다.
  • 생산: 데님은 일본이나 미국, 가죽 제품은 이탈리아, 특정 워크웨어는 또 그 분야 장인이 있는 곳에서. 이런 식으로 각 아이템에 가장 적합한 생산 방식을 고집한다. 대량 생산으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퀄리티다.
  • 디테일: 봉제 방식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쓴다. 체인 스티칭은 튼튼하면서도 특유의 워싱 자국을 만들어내고, 리벳이나 버튼 같은 부자재도 빈티지 디자인을 복각하거나 자체 개발해서 사용한다. 옷을 뒤집어보면 그 만듦새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 워싱과 후가공: RRL 옷들은 새것인데도 마치 오랫동안 입은 듯한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다. 이건 단순히 옷을 낡게 만드는 게 아니라, 수많은 연구와 테스트를 거쳐 최적의 워싱과 디스트레스드 가공을 하기 때문이다. 이 또한 RRL만의 기술력이다.

 

Chapter 5: RRL이라는 세계, 옷 너머의 이야기

RRL을 입는다는 건, 단순히 옷을 입는 행위를 넘어 어떤 ‘애티튜드’를 공유하는 것과 같다. 남들 다 따라 하는 유행보다는 자기만의 스타일을 고수하고,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 좀 느리고 투박해 보여도, 그 안에 담긴 진정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음이다.

RRL 매장은 그냥 옷 가게가 아니다. 마치 오래된 잡화점이나 공방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준다. 낡은 나무 바닥,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소품들, 그리고 RRL 옷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브랜드가 추구하는 세계를 직접 경험하게 만든다. 이런 총체적인 경험이 RRL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다.

당신의 이야기를 담아갈 옷

RRL은 트렌드를 쫓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멋스러워지는 옷을 만든다. 랄프 로렌이라는 거장이 자신의 뿌리와 로망을 담아 펼쳐낸 가장 미국적이면서도 개인적인 이야기다. RRL 옷을 입는다는 건, 그 이야기에 동참하는 것과 같다. 당신이 이 옷을 입고 만들어갈 새로운 이야기, 그 시간의 흔적들이 더해져 RRL은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RRL의 세계. 한번 발 들이면 헤어 나오기 쉽지 않다.